폐선

 



껍질이 벗겨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
저문 노을에 잠겨있다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뼈마디 사이로
소줏병에서 흘러나온 가락들이
어지러이 춤을 추고
찢어진 깃발에는
아직도 만선의 꿈을 못 이룬
패장의 우수가 나부끼고 있다
검은 파도를 뚫고 나가며
저 대해에서 소리치던 함성은
잿빛 갈매기 떼에 포위된 채
녹슨 기관실에서 푸른 임종을 맞고 있다
뱃고동 이미 숨을 끊고




헝클어진 머리 굳은살 박인 손으로
난간을 잡고 섰다
신호등 꺼진 사거리처럼
뒤죽박죽이 된 혈관 속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이
붉은 바다를 이루고
여기저기 술 취한 바람은 해고된 남자의
빈 가슴을 잡고 비틀거리고 있다
만선은 아니어도
아이들 선창에 하얀 깃발로 남고자 했던
아버지의 꿈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는데
이미 해체선이 닻을 내리고 있다
폐선 곁으로. 폐선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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