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Ⅰ
껍질이 벗겨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 저문 노을에 잠겨있다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뼈마디 사이로 소줏병에서 흘러나온 가락들이 어지러이 춤을 추고 찢어진 깃발에는 아직도 만선의 꿈을 못 이룬 패장의 우수가 나부끼고 있다 검은 파도를 뚫고 나가며 저 대해에서 소리치던 함성은 잿빛 갈매기 떼에 포위된 채 녹슨 기관실에서 푸른 임종을 맞고 있다 뱃고동 이미 숨을 끊고
Ⅱ
헝클어진 머리 굳은살 박인 손으로 난간을 잡고 섰다 신호등 꺼진 사거리처럼 뒤죽박죽이 된 혈관 속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이 붉은 바다를 이루고 여기저기 술 취한 바람은 해고된 남자의 빈 가슴을 잡고 비틀거리고 있다 만선은 아니어도 아이들 선창에 하얀 깃발로 남고자 했던 아버지의 꿈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는데 이미 해체선이 닻을 내리고 있다 폐선 곁으로. 폐선 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