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자전거
| 이화윤 | 2005-10-29 오전 10:14:05
아버지의 자전거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낡은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양말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자전거 뒷칸에는 언제나 커다란 상자가 실려 있었다. 색이 바랜 흰색 남방에 감색 바지를 입고 하얀 고무신을 신으신 아버지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언덕을 올라오시곤 했다. 나와 동생은 집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이면 한달음에 달려갔다. 장사가 잘 될 때면 양말 상자 위에는 과자 봉지 하나가 달랑 얹혀 있었다. 과자 봉지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두 딸을 보며 아버지는 넉넉한 웃음을 짓곤 하셨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들어오시는 아버지께서 이따금 깜깜해질 때까지 오시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와 동생은 기다리다 지쳐 멀리 찻길이 보이는 곳까지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그곳에는 극장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고 이곳저곳 리어카에는 먹을 것도 푸짐했다. 여러 모양의 센베 과자와 눈깔사탕, 알사탕을 파는 곳. 번데기, 소라, 옥수수를 파는 곳. 고구마를 튀겨 파는 곳. 설탕을 녹여 다양한 모양의 사탕을 만들어 파는 곳. 술빵과 쑥개떡을 파는 곳이 있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여기저기 잘 기웃거렸다. 그러면 동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ꡒ그러다 아버지 놓치면 어쩌려고 그래?ꡓ 하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동생과 손을 꼭 잡고 길 한구석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는 일은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신기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하나 둘 켜지는 불의 숫자를 셈하다 보면 밤하늘에는 별들이 나와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아예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한 손을 턱에 괸 채 별을 세기에 바빴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은 놓치지 않았다. 옆에서 동생이 ꡒ언니, 자전거ꡓ 하고 외쳤으니까. 자전거마다 쫓아가던 우리의 시선이 흰색 남방과 흰 고무신 차림의 사람에게만 머물게 될 무렵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는 저 멀리서 헉헉거리며 굴러왔다. 자전거에서 내리신 아버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는 나에게 ꡒ오늘은 뭘 사둘까? 이 아바디를 기다렸으니끼니 담깐 기다리라마ꡓ 하며 아버지는 리어카가 즐비한 곳에서 노릇노릇 튀겨진 고구마를 사오셨다.
종이 봉투엔 벌써 기름이 배어 나오고 금방 튀겨진 고구마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길쭉한 고구마를 하나씩 뽑아 누구 고구마가 더 크나 키 대보기 하며 먹었다. 고구마를 다 먹는 동안 아버지는 뒤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셨다. 손에 빈 봉투를 구겨 쥐고 아버지의 자전거에 매달리면 또 다른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구역을 정해 놓고 동생과 나를 번갈아 앉히며 자전거를 태워주셨다. 집에 오는 동안 서너 번은 자전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는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던 그 기쁨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이마의 땀을 쓸어 내리고는 양말 상자를 자전거에서 내려 10여 개가 되는 계단을 오르셨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산꼭대기에 있었고 계단을 올라가야 대문이 있었다. 양말 상자를 집에 들여놓으신 아버지는 변함 없이 낡은 자전거를 끌어올리는 일을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자전거를 집안으로 들여오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매일 그 일을 하셨고 자전거 점검도 잊지 않으셨다. 녹슨 곳은 기름을 묻혀서 닦고 뻑뻑한 곳에는 기름칠을 하셨다. 그리고 처마 밑 한쪽에 자전거를 들여놓고는 비닐로 덮으셨다. 그때 아버지의 자전거는 우리 가족의 삶을 도와 주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아무리 낡았어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 자전거는 양말 공장을 하려고 변두리 공장 지역으로 집을 사서 옮길 때까지 작은 보탬을 주는 것으로 우리와의 인연을 끝냈다.
아버지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칠순이 다 되어서였다. 한 집에 세 들어사는 사람이 버리고 간 녹슨 자전거를 손질해서 타고 다니셨다. 은행이나 동사무소, 구청에 일이 있어서 가실 때,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실 때, 그리고 내가 사는 집에 오실 때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셨다. 연세도 있으신데 자전거 타는 것은 위험하다고 해도 아버지는 ꡒ괜찮다ꡓ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염려와 걱정 뒤에는 아버지의 옛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아련한 기쁨도 있었다. 큰딸 은주가 그토록 입고 싶어하던 청바지를 사서 자전거 뒤에 싣고 오시던 날 나는 어린 시절 과자봉지를 안겨주며 웃어주시던 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전거와의 추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가끔 길에 버려진 자전거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만져보게 되는 것은 아련한 기억 뒤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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