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의 저녁
홍은택
시월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만취한 새벽 아파트 계단 오르며 듣는
심장의 박동소리 섬세한, 황홀한,
가난한 마술사의 망토 밑에서
사라질 순간을 기다리는 배고픈 비둘기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지 일주일이 지났다
굵어지는 빗줄기 속 칸나가 피어오르고
바흐가 잔뜩 흐린 얼굴로 꽃잎 오선지에
절제의 기하학을 꾹, 꾹, 새겨 넣는다
단 한 번도 악보대로 울린 적 없는 피아노
건반 위 후두둑 떨어지는 소주 방울들이
주름진 위벽을 향해 튀어 오르며 칸타타를 연주한다
시월, 그가 흰 지휘봉을 휘두르자
빗속으로 허기진 비둘기들이 날아오른다
*시-시안 겨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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