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칸나의 저녁
| 간이역 | 2005-12-05 오전 8:56:42
 

칸나의 저녁

 

 

홍은택





시월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만취한 새벽 아파트 계단 오르며 듣는

심장의 박동소리 섬세한, 황홀한,

가난한 마술사의 망토 밑에서

사라질 순간을 기다리는 배고픈 비둘기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지 일주일이 지났다

굵어지는 빗줄기 속 칸나가 피어오르고

바흐가 잔뜩 흐린 얼굴로 꽃잎 오선지에

절제의 기하학을 꾹, 꾹, 새겨 넣는다

단 한 번도 악보대로 울린 적 없는 피아노

건반 위 후두둑 떨어지는 소주 방울들이

주름진 위벽을 향해 튀어 오르며 칸타타를 연주한다

시월, 그가 흰 지휘봉을 휘두르자

빗속으로 허기진 비둘기들이 날아오른다





*시-시안 겨울호에서

| 물들어 가는 거지...
| [죽겠네]라고 말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