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낚으며
| 한성희 | 2005-10-29 오전 10:17:57
삶을 낚으며

바다에는 기다림이 있어 좋다. 찝찔한 갯내음과 해조음, 안개가 뒤섞인 바다는 가슴 밑바닥까지 저려오는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짙게 깔린 어두움 속에 바다는 곤히 잠들어 있다. 배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모터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설 뿐이다. 잔잔한 수면 위로 은빛 물고기들이 튀어 오른다. 아마도 새벽잠에서 금방 깬 물고기들일 게다. 나는 가끔 그런 고향의 바다를 생각하며 낚시를 한다. 고향과 바다는 내게 있어 기다림이다.
바다 낚시를 하려면 어두움이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신 새벽, 짙은 안개를 가르며 점점이 빛나던 육지의 불빛이 멀어질 즈음이면 바다 색깔은 푸르다 못해 군청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한번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것 같지 않은 시커먼 입을 벌린 블랙홀만 같다. 두세 시간을 달려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 이제 낚싯줄을 내릴 차례다.
바다 밑까지 낚시가 닿을 수 있도록 묵직한 추를 달고 양쪽 고리에 미끼를 끼운다. 미끼로는 살아있는 미꾸라지와 지렁이가 제격이다. 살아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알맞게 잘라 빠져나오지 않도록 중심 부분을 잘 끼운다. 또 미꾸라지는 배 바닥에 한두 번 팽개쳐서 기절시킨 다음 주둥이부터 끼워야 한다. 처음엔 미끌거리는 감각이 징그러워 망설인다. 하지만 횟수가 잦아질수록 이내 그런 생각은 사라져 버린다.
낚시를 하는 동안은 배의 시동을 꺼야 한다. 물살에 밀려 낚싯줄이 서로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앉아 얼레를 풀어 바다 밑으로 던져 넣는다. 그리곤 가끔씩 미끼가 살아 있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하여 위 아래로 조금씩 줄을 흔들어 준다. 무표정을 가장하지만 손끝에 전해오는 물고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어둠을 뚫고 뿌옇게 밝아오는 일출을 바라보며 기다림은 시작된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미세한 느낌이 온 신경을 곧추세운다. 이제 잡느냐 잡히느냐의 물고기와의 싸움이다.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으면 그 속에 온 세상이 보인다. 미끼를 던지자 말자 이건 웬 횡재냐 싶게 순식간에 달려들어 미끼를 무는 성미 급한 놈이 있는가 하면, 먹이를 조금씩 건드려만 보고 물지 못하는 의심 많고 조심성 많은 물고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먹이만 달랑 따먹고 도망가는 얌체 같은 놈도 있다. 똑같은 물고기이면서도 이렇듯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인다. 흡사 우리들 인간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인간 세상의 축도를 바다에서 보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먹고 먹히느냐의 치열한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남의 말에 현혹되어 미끼를 물었다가는 재산은 물론이고 가정까지 파탄 나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남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키 재기를 해보지만 결국은 그런 유혹에 빠져 넘어가 버리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잘못 문 미끼로 인해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요즈음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금감위 사건이며, 한동안 청문회로 떠들썩하게 했던 옷 로비 사건들이 그렇다. 비단 자기만 미끼를 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까지도 미끼의 유혹에 넘어가게 하는 바람잡이와도 같은 물고기들은 아닐지……. 하지만 아무리 미끼를 던져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물고기와 같이 유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는 인생이 모두 담겨져 있다.
눈이 시리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손끝으로 뭔가가 잡아 내리는 듯한 감촉이 온다. ꡐ아, 드디어 왔나 보다ꡑ 이내 내 손놀림이 빨라진다.
미끼에 걸린 고기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얼른 낚싯줄을 위 아래로 흔든 다음 걷어올리기 시작한다. 묵직한 손맛이 온몸에 짜르르 감지되어 온다. 드디어 바다 위로 쑥 올라오며 꼬리치는 건 두 마리의 우럭이다. 갑자기 긴 가뭄 끝의 단비 마냥 가슴이 탁 트이고 움츠려들었던 어깨가 쫙 펴진다. 오랜 시간 물고기와의 무언의 싸움의 결과다.
우리는 매 순간순간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특히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언제 미끼를 물지 모르는 물고기를 기다리듯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는 자신의 삶을 기다린다.
문득 고향의 바다를 떠올린다. 거기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배어있는 부모님의 억센 살갗이 있다. 이따금씩 낚시를 떠나는 남편을 따라나선다. 그리곤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던져진 미끼를 덥석 물지 않는 지혜를 배운다.
여기저기서 릴 감는 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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