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선생님 떡방앗간 간 사연
| 김운연 | 2005-10-29 오전 10:32:46
미술선생님 떡방앗간 간 사연

은아 어머니는 중학교 미술 선생님을 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떡방앗간에서 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남편이 있었지만 은아 어머니가 한 가정의 모든 책임을 다하여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무 자르듯 아이들을 위해서라며 은아가 오 학년이 되던 해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인데도 학교에 사표를 내었다.
남편은 동네 스포츠센터 볼링선수 겸 주부들에게 볼링을 지도하는 강사였는데 가정을 가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전혀 없었다.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들과 염문 속에서 가정에 찾아드는 건 카드 빚 독촉과 낯선 사람들의 협박에 시달리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받은 온갖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녀는 신경질적이며 선생님으로서 써서 안 될 온갖 폭언들을 이웃이나 누구에게든 스스럼없이 해댔다. 이웃들도 접근할 수 없는 상태의 삐뚤어진 성깔에 안타까워 해야 했다.
잦은 부부싸움과 신경성 노이로제 엄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해 하고 성적은 물론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로 가려진 얼굴빛에서 어린이들로서 활기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부모는 선택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데 자기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는 건 아주 슬픈 일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생활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양육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의 무책임이 또 다른 사회악을 만들게 되고 마는 것이다. 기가 죽어 주눅이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이라는 지식인으로서의 그녀는 정신이 돌 지경이었다.
자기 자식도 제대로 자라지 못할 열악한 환경 속에 두고 남의 자식을 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운명과 삶에 대한 끝없는 갈등과 욕망을 이기지 못해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고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교직은 내게 맞지 않는 상황이라며 학교를 그만 두었고 책에서 얻은 타당성과 진리대로 나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책 속에서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인간의 죄는 지은대로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 죄는 아버지가, 아버지 죄는 또 아들이, 아버지 죄는 또 그 아들이 이어받고 그 아들은 그 자식에게 계속 이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그 죄값을 치르지 않으면 대대손손 끝없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남편이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도 선대에 지은 죄를 뒤집어쓰고 의지와 상관없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그녀 나름대로의 지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편이 불쌍해지고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 죄값을 치러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죄값을 치르는 것이 그녀의 몫이었다.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면 모성애의 본능이 제일 강인한 것이라 어떤 고통도 이기리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의 학대도 빚도 모두 받아들이기로 작정을 했다.
남편과 맞서 싸우는 일도 하지 않았다. 집을 팔아서 빚을 갚았고 아이들에겐 가난하지만 항상 그들 곁에서 필요한 엄마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학교에 간 시간을 이용해 동네 떡방앗간에서 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앗간 주인이 장삿속으로 날짜가 지난 떡을 속여 팔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고 떡을 버려 주인과 여러 번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떡을 사먹어 본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집이라면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오히려 장사는 더욱 잘되어 주인이 고맙다고 했다.
방앗간에서 일한 돈을 모아 은아의 밀린 피아노 레슨비를 가지고 와서 지난날의 악몽 같은 일과 오늘이 있기까지의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를 위한 이기심에서 벗어나니 마음에 평화가 왔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복에 인간은 정말 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도 시간을 내어 그녀가 읽은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고 했다.
자식을 위해 어떠한 고통도 감수하겠다고 하였고, 학교를 그만 두고 나니 남편도 많이 달라지고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녀에게는 절실하게 바라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또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기도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요즈음에 가족과 함께 기도를 한다고 했다. 남편이 기도를 하게 된 동기는 아내가 절실히 원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을 사랑해 보면 감회가 올 것이라는 멘트를 듣고 가장 싫어하는 기도를 한번 사랑해 보자는 마음을 먹고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무슨 힘에 의해서인지 매일 빠지지 않고 가족기도에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천주교 신자로서 따뜻한 가정이 되어 단칸방이라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성모 마리아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는 오늘이 너무 행복하고 밝고 명랑한 생활을 되찾은 아이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은아도 예전에 비해 예의 바르고 맑고 명랑한 소녀가 되어 정신과 육체가 일치된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그리고 피아노도 열심히 연습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예고에 합격까지 하였다.
산산이 부서지던 한 가정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까지 한 여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동양철학이란 양서의 힘을 생각해 본다. 나를 바꿀 수 있는 힘도 그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으려나.
'선생님, 선을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라던 말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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