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고무신
| 안명숙 | 2005-10-29 오전 10:11:41
흰고무신

산이 연둣빛으로 은은하게 물드는 오월, 그러나 가을 숲처럼 낙엽이 수북히 쌓인 오솔길을 걷는다. 발자욱마다 들리는 소리 ꡒ바스락 바스락ꡓ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친다.
그리고 오솔길 가에 작은 오두막집, 그 집은 오월이면 푸른 잎으로 덮이고 이때쯤이면 시어머니는 고추며 호박과 가지, 콩을 심었다. 그렇지만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발길이 한동안 머물지 않은 밭에는 지금 잡초만 무성하다.
집안을 들어섰건만 인기척이 없다. 방문을 열며 ꡐ어머니ꡑ 하고 불렀지만 대답이 없으셨다. 정정하시던 어른이 병석에 누운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몇날 며칠을 자리 보존하고 누워계시니 당신 자신이야 오죽 답답하시랴 싶다. 나는 어머니 옆에 다가앉는다. 그러자 소변을 보시겠다며 ꡒ나 좀 일으켜라ꡓ고 하셨다. 어머니를 들어안아 변기 위에 앉혔다. 그리곤 다시금 자리에 눕혀 드렸다. 하루 이틀 반복되는 일이 아니다.
잠시 후 일을 하려고 부엌에 나와 있으니 또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도 소변을 보시겠다고 한다. 기저귀를 채워드리며 소변을 보시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일으켜달라고 막무가내다. 간신히 달래서 얼굴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니 나도 힘이 부쳐 몸을 가누기가 힘겹다.
이렇게 같은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된다. 중풍으로 일년여 앓아 누워 계신 분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겠지만, 병자의 늘어진 몸을 추스르며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어떤 때는 문병온 사람들의 손마저 빌려야 한다.
점심 때가 되자, 팥죽을 쑤어 조금씩 입에 넣어드렸다. 그러나 겨우 몇 번 받아 드시더니 싫다고 하신다.
밥상을 물린 뒤 옷가지를 정리하려고 장롱문을 열었다. 농 안에는 평상시 어머니께서 나들이 하실 때 입으셨던 한복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동정 몇 개가 비닐 봉지 안에 가지런히 있다. 저고리 깃이 더러워지면 바꾸어 달라고 사다 놓으신 모양이다. 음식도 못 떠드시는 어머니가 언제 다시 이 한복을 입고 나들이 하실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 온다.
자리에 누워 천장만 멍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어머니. 울컥 다시 이는 눈물을 머금고 다른 장롱문을 열어본다. 버선이며 속치마 그리고 털실로 짠 스웨터도 들어있다. 눈에 띄는 대로 차곡차곡 정리하다가는 자그마한 종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꼬깃꼬깃 접힌 경로승차권이 몇장 들어 있었다. 홀로 텃밭을 가꾸시던 어머니는 가끔 씨앗을 사려고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시곤 했다. 그때에 가지고 다니시던 승차권이리라. 그러나 승차권은 해를 묵힌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 한 모금도 스스로 마실 수 없도록 팔과 다리가 굳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승차권을 만지다 말고 어머니를 돌아다 보았다. 다시금 가슴이 메어져 온다. 어머니께 눈물을 보일까 걱정스러워 얼른 밖으로 나왔다. 앞산에는 마른잎을 떨구고 긴 겨울을 지낸 나무들이 어린잎을 내밀고 있다.
갓 시집왔을 무렵이었다. 앞산 고개마루를 넘어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간 적이 있었다. 성한 사람에게도 힘에 부치는 거리였다. 그런데 높은 뾰족 구두를 신고 산길을 걸었으니 발이 성할 리가 없었다. 나는 가다말고 어머니께 신발을 바꾸어 신자며 어린애처럼 길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흰고무신을 나에게 벗어주고는 대신 당신은 내 구두를 신으셨다.
그때 어머니는 환갑이 넘은 연세였다. 잘 걷지 못하면 어찌하나 걱정했는데, 어머니는 잰 걸음으로 고갯길을 넘어 가셨다. 얼추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오랜만에 시장에 간 길이어서 이것저것 사다보니 짐이 꽤나 많았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힘에 벅찬 거리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짐을 모두 보자기에 싸더니 머리에 이고는 앞장서서 가자고 했다. 바꾸어 신은 구두가 높아도 숨이 턱에 닿는 길을 어머니는 땀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잘도 걸으셨다. 그날 나는 구두 대신 하얀고무신을 바꾸어 신고 편안하게 산길을 넘었다.
이십년이 지난 후 나는 스물이 넘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어머니는 이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와 살가웠던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질 않는다. 젊어서 홀로 되시어 아들을 키우느라 힘겨웠던 삶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꿋꿋하게 살아오신 어머니. 하지만 이제 세상을 떠나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지내시는 어머니에게 나는 아무 것도 해드릴 수 없으니 어쩌랴.
어느새 냉이꽃이 피고 종다리가 이쪽저쪽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울고 있다. 이 봄에는 어머니와 함께 하얀 고문신을 신고 시장에 가는 꿈이라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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