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제사
| 양숙희 | 2005-10-29 오전 10:31:53
여름 제사

지난 봄, 아침 방송에서 ꡐ나는 제사가 싫다ꡑ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여인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는 그녀의 솔직한 표현에 나도 동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음력 칠월 초닷새.
아버님도 뵌 적이 없다는 시증조할머니 제삿날이다. 방학이 시작되자 큰 동서는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유럽 배낭여행에, 미국 연수에,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외국을 나간다.
"동서, 증조할머니 제사 부탁해. 내가 올 때 선물 많이 사올게" 하고 외치며 화려하게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기죽을 새도 없이 올해도 여름 제사는 내 차지가 되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며칠 전부터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지 큰 시누, 작은 시누이들이 다 모였다.
아버님은 단정하게 앉아 밤을 치신다. 솜씨 좋은 큰 시누이에게는 부침개 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다섯 가지 나물에 양념을 넉넉히 넣어 무쳤다. 항상 깔끔한 작은 시누이는 여기저기 빈 그릇들을 가져다 씻느라 바쁘다. 큰 아주버님은 동서 몫을 다 하려는 듯 큰 시누 옆에 앉아 동그랑땡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어머니는 식혜 밥이 다 삭았나 맛보라며 내게 한 그릇 내미신다. 밤 열시가 되어서야 제물 준비가 끝났다. 언제 나갔다 왔는지 아주버님이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제수 씨가 먼저 골라 봐요" 하며 봉투를 활짝 열어 보인다. 모두 한소큼 쉬며 시원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동육서, 좌포우혜, 조율이시, 아버님과 아이들이 진설을 했다. 나는 포도 수박 참외 옆에 찐 옥수수를 한 접시 수북히 올렸다. 증조 할머니는 옥수수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다섯 마지기 밭에 온통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고 하신다. 메, 탕국에 숭늉까지 올리고 나니 제사음식이 한 상 그득하다.
'제사상은 주부의 꽃'이라고 했던 어느 소설가의 말이 이제야 실감난다. 모든 상차림의 근본이 거기에 있다던가.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여들고 남편과 아버님의 장보기, 어머니와 며느리의 솜씨, 온 가족의 손이 합쳐져 상차림의 기본이 되는 이 음식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삼복더위에 일할 생각으로 심란했는데 잘 차려진 제사상을 보니 마음 다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친정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어머니는 종가의 맏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이던가. 처음으로 시작한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어 내일 모레면 이사를 가야만 했다. 삼촌, 고모, 친척들이 모여 무어라 무어라 술렁이는데 어머니는 놋제기를 꺼내어 짚을 둥그렇게 말아 정성스레 닦으셨다. 여름방학 전이었으니 상할아버지 제사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며칠째 계시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언제 장을 보셨는지 한 상 가득 제사상을 차리셨다. 철없이 어리기만 한 우리들은 모깃불 피운 평상에 앉아 수박보다 얼음이 더 많은 화채를 한 그릇씩 먹고 ꡒ엄마, 제사 언제 지내요ꡓ 하고 조르다가 어느새 잠이 든다.
탕국에 쌀밥 말아 고기산적이며 명태전을 맛있게 먹는 꿈을 꾸다가 사아악 사아악 바람소리에 퍼뜩 눈을 뜬다. 푸른 새벽별이 갑자기 눈동자로 쏟아져 들어와 으앙 울음을 터뜨린다. 언제 오셨는지 아버지는 ꡒ절하라고 몇 번을 깨워도 안 일어나드라ꡓ 하시며 부채를 내려놓고 내 등을 다독거려 주신다. 대청 마루를 보니 아직 촛불이 꺼지지 않은 상 앞에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두 손을 합장하여 비비며 산사람에게 하듯 조곤조곤 무언가를 얘기하고 계셨다.
상할아버지는 만석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집안 살림을 일으키신 분이었다. 그런데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는 끼니를 술로 때울 정도였다.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죽을 끓여 들여가면 게장과 함께 그것만은 드셨다고 한다. 또 곳간 열쇠도 맡기셨다고 하니 어머니가 특히 상할아버지 제사에는 각별함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 상 앞에서 뭐라고 빌었어?"
"응, 여름 제사를 잘 지내면 삼대가 복을 받는단다. 할아버지께 우리 애기들 다 클 때까지 잘 지켜 주세요 했지" 하신다.
아버님과 시아주버님이 문 밖에서 지방을 태우셨다. 요즈음 아이들은 잠도 없는가. 풍습이 달라 상에 올릴 음식을 따로 담아놓고 저희들 좋아할 음식 한 상 차려주었건만 음식에는 뜻이 없고 할아버지를 줄레줄레 따라 다닌다.
"이제 가셨어요? 그런데 왜 할머니가 안 보여요?"
"왜 종이를 불에 태워요? 왜 음식이 그대로 있어요?"
일곱 살, 여섯 살.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약오르고 샘나던 큰동서의 해외 연수 탓에 잊혀져 가던 제사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다.
음복하라는 아버님 말씀에 얼굴도 알 수 없는 시증조할머니처럼 옥수수를 한 입 덥석 베어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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