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부신 그리움으로
| 유영자 | 2005-10-29 오전 10:13:18
눈부신 그리움으로


올해도 제일 먼저 찾아온 봄빛은 수줍게 싹이 트고 소리 없이 피어나 제자리를 지키는 바위 틈 사이 쑥잎, 제비꽃, 민들레였다.
긴 겨울이 진력이 날 즈음이 되면 달리는 차창 너머로든 아파트 베란다에서든 세상을 향해 두리번거리지만 늘 봄의 기색만 내비칠 뿐 아직도 그 자취를 볼 수 없다. 그 때 문득 누런 잔디 숲에, 층계 돌 틈 사이에 뾰족이 얼굴을 내민 초록잎의 모습은 얼마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개나리가 봉오리를 맺었는지, 목련은 어느 날 떠오를지, 벚꽃이 꽃망울을 달았는지를 살피고 기다리는 사이 그 여린 잎으로 흙을 비집고 나온 잡초들의 강한 생명력이 새삼스럽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대단히 여기지도 않는 잡초들의 탄생은 해마다 겪는 일임에도 그 때마다 탄성을 지르게 되곤 한다.
좀더 화려한, 좀더 현란한 봄의 축제를 기다리는 사치 앞에 살며시 봄을 이끌고 온 작은 풀꽃들의 온기로 대지는 갑자기 생기를 찾는다.
가장 작고 소박한 풀잎들의 체온이 쌀쌀한 봄바람을 실어 우리 살갗을 간지럽힐 때 또 다시 봄을 맞이할 수 있음에 기쁨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다. 그간 신장과 방광에 생긴 내 몸의 돌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봄빛은 성큼거리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신장결석증으로 수술도 했고 입원도 여러 번 해 친지들은 사리가 아니냐고 놀리지만 난 심각했었다. 살아오면서 순간순간의 아픔이 특히 미움이 돌이 되어 나를 아프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의학적 근거도 없는 연민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얗게 반짝이는 모래알들의 결정체가 내 신장에서 만들어져 내 몸을 괴롭히는 사실이 진정한 내 모습이고 우리 삶은 아픔과 사랑에 의해 완성해 가는 일이라 스스로 달래본다.
창 밖은 봄, 무수한 내 안의 잡티들이 꽃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부디 미움이 일면 그리움으로 아련하게 하고 싶다.
그래, 이 봄엔 더 활기찬 그 무엇이 다가올 예감도 가져본다. 눈부신 그리움으로 마음은 넉넉해져 우리 주위에 작은 사랑을 나눌 수도 있으리라.
함께 하는 이들의 가슴을 헤아리고 서로가 꽃이 되는 일. 환한 빛이 되는 일로 어디 이 봄엔 눈부신 그리움 하나 가져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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