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맘때쯤이었을 겁니다. 그 아이가 라일락 한 줌 을 꺾어 수줍은 듯 내 앞에 던져놓고는 단발머리 찰랑거리 는 햇살을 매달고 도망치듯 달아난 것이 말입니다. 우리 동네 초입에 일본 사람들이 지었다는 다리가 하나 있 었고 그 다리 밑에 임시로 얽은 움막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 아이네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껏 부끄러울 그 집에서 아침마다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언제나 보기와 다르게 무 척 맑았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그랬고 엄마가 그러하 였고 올망졸망 동생들이나 특히 그 아이가 그랬습니다. 유 난히 하얀 얼굴에 동그란 눈동자, 가느다란 손목이 언제나 이뻤습니다. 아마도 얽은 움막 사이로 밤마다 별이 내려와 살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그 집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기분이 좋았고 언제나 한 십 미터쯤 거리를 두 고 타박타박 따라오는 그 아이가 전학을 올 때 왜 옆 반으로 들어갔는지 참 속상했습니다. 가을 운동회 날 아침에 핀 들국화 마냥 청순하고 가냘프기 만 하던 그 아이가, 한 번도 말을 건네지 않던 그 아이가 던 지고 간 라일락 한 줌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날 그 진한 향기에서 헤어났을 때는 내가 그 아이를 다시 볼 수 없었을 때였습니다. 아마도 지금으로 치면 IMF쯤 되는 고통으로 생계를 좇아 이리저리 떠다니던 아버지를 따라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꺼내보기 좋은 기억은 아닐지라도 해마다 5월이 오면 그 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나에게 한없이 아름다운 유년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레 좋습니다. 그리고 이제사 알게 된 ‘아름다운 맹세’라는 라일락의 꽃말도 참 좋습니다. 바란다 면 그 아이 잘 자라 지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 고 혹, 오늘 저녁 퇴근길 시장 골목에서 맑은 웃음 만난다면 그게 그 아이의 웃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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