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난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인 가요. 시골 고모네 집에 갔다 오는 길이었습니다. 쳐다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한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오후, 갓 베어 낸 풀 냄새가 상큼하게 널린 천방 둑길을 지나 신작 로에서 털털거리는 버스를 탔습니다. 속살까지 푹푹 찌는 삼복더위라 열어놓은 창문도 소용이 없고 간간이 옆 차선 의 하얀 먼지만 잔득 뒤집어쓰고 있는데 때마침 청명한 하 늘을 가르며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지 않겠습니까? 벌겋 게 달아올랐을 버스 지붕을 식히며 겨드랑이 사이로 스며 드는 그 시원함이란 고갯마루에서 공짜로 내리달리는 자전 거보담 못할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시원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만 이 빗줄기, 읍내에 다 다다라도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터 미널 지붕 밑에 겨우 내리기는 하였지만 곱게 빼서 입은 기지 바지는 어떻고, 고모가 어머니 드리라고 싸 주신 한 지공예는 또 어떡하나. 비 맞으면 안 될 일밖에 없는데 서 울 가는 기차 시간만 바짝바짝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신문 지를 머리에 이고 한 발짝씩 옮겨 보았지만 기어이 내 키 보다 조금 높은 미장원 처마 밑에 꼼짝없이 붙들렸습니다. 얼마를 지났을까,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데 미장원 문이 빼꼼이 열리더니 파란 비닐 우산 하나가 쏙 나왔습니다. 까무잡잡한 또래 아이의 빨리 받으라는 눈짓에 나는 고맙 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우산을 받아들곤 기차역으로 달려 갔습니다. 겨우 차 시간 맞춰 집으로 올라온 후 몇 십 년, 아직도 나는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그 비닐 우산의 촉촉 한 감촉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눈빛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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