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는

 

막막한 밤, 뒤로 난 문을 열면 낮은 뜨락에 달빛이 소리
없이 내려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운 빛깔이 그네를 타
듯 오동나무 잎사귀에 걸리고 그리운 사람의 체온처럼 아
주 적당히 바람도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누구와 함께 보았던 봉평의 그 무연히 펼쳐진 메밀
밭처럼 하얗게 하얗게 사무치도록 외로움 밀려왔으면 좋겠
습니다. 가끔 잊혀졌던 기억을 꺼내듯 잠 못 든 산새 한
마리 짧은 울음을 던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숨막히도록 누군가가 보고 싶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움
이란 망각에 인색한 사람들의 사치라고 했던가요. 단정하
게 나 있는 아스팔트 길보다 이름 모를 풀들로 가득한 둑
방길을 더 좋아하는 시골 촌뜨기지만 사치도 이런 사치라
면 분에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술잔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발을 채우는 막걸리
소리가 철을 잊은 풀벌레 소리보다 컸으면 좋겠습니다. 이
내 딸랑거리는 양은 주전자의 허기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그리움 커지면 서랍 깊숙이 들어있던 오래된 편지 한 장
꺼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지 속에는 빛바랜 시간과 짙은 커피 향이 있고 또, 보고
싶다, 사랑한다, 눈물이 난다 등등 온통 대중가요 가사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숙, 자, 옥
등으로 끝나는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달빛도 원망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10월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