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비만 오면 창문을 열고 무망이 하늘을 바라보다 얼굴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까지 띄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손을 빗줄기에 대어 보기도 하고 급기야는 살 나간 우산을 집어 들고 마 당으로 내려가 서성이든가 아니면 아예 비를 맞으며 안쓰 럽게 스러진 넝쿨장미 잎사귀들을 만져 보기도 하는 모습 은 아무래도 나이에 비해선 지나친 센티멘털이거나 비정상 으로 가는 첫 갈림길에 와 있는 듯했습니다. 더욱이 비라고 하면 단 두 방울만 떨어져도 철떡 같은 약 속도 아랑곳없이 몇 달을 별러 온 야유회마저 내팽개칠 정 도로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던 그가, 갑자기 축축한 감촉 이 온 몸을 감싸오면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든가, 쏟 아지는 빗줄기야말로 인간의 내면으로 통하는 진실의 길이 라나 뭐라나 하면서 올해 지겹도록 내리던 비, 그 비의 찬 미주의자로 돌변한 것이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그것도 무슨 스무 살 청춘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긴 뱁새가 어찌 봉황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사랑이랍 니다. 얘기인즉슨 지금까지 그토록 기다리고 또 찾아 헤매 던 그 여자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치렁치렁 비가 내리는 날 우연히 만났고 또 그 여자는 비를 참 좋아한답 니다. 사랑이란 참으로 신비로운 것, 사랑하는 사람이 쳐다보 는 하늘이 빨간 색이면 나도 빨갛게 보이고, 그 사람이 좋 아하는 것은 내가 참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것이 되나 봅 니다. 이렇듯 누구와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 절대동 화, 바꾸어 보면 그게 사랑인 것 같습니다. 소매 끝에 바람 스산하게 드는 이 가을, 아내도 나와 같 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손 잡고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겠습니다. 그 친구 몰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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