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여름날 바깥일을 보러 나갔다가 우연찮게 비라도 흠뻑
맞고 나면 으레 후회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후 한때
비’라는 일기예보를 지나쳐 들으며 잡았던 우산을 다시 놓
고 나온 일 말입니다. 어쩌다 광화문 쪽에 들어갈 일이 있
어 성산대교로 갈까, 마포대교로 갈까 하고 한참 망설이다
가 ‘출퇴근 시간 아니니까’ 하면서 마포대교를 선택한 날,
그날따라 여의도에서부터 꽉 막힌 길 위에 서 있다 보면
‘저쪽 길로 갈 걸’ 하면서 또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
다. 먹자골목에서 이 집 저 집 한참 고르다가 들어간 집이
제일 맛없는 집일 때도 있고, 집 앞 미장원에서 할까 길
건너 헤어 숍에서 할까 고민 고민 끝에 한 파마가 영 마음
에 안 들어 하루 종일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반면, 카드 마감 날 길가에 차 세워 놓고 들어간 은행 자
동코너 긴 줄 앞에서 어디에 설까 망설이다가 선택한 줄,
그 줄의 앞사람이 쭉쭉 빠져 금방 처리하고 나올 때면 나
의 현명한 선택에 절로 기분 좋은 날도 있고, 몇 년을 모
아 몇 번을 망설이다가 빚을 잔뜩 안고 산 아파트가 자고
나면 값이 또 오르는 정말 기가 막힌 선택도 있을 수 있습
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에서부터 사업의 중요한 방향을 결
정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선택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습니
다. 어쩌면 피할 수도 없는 그 선택의 결과들을 하나씩 이
어놓은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세상 일 너무도
안 풀려 다시 태어난다면 일도 사랑도 정말 멋지게 한번
해 볼 것 같지만 우리는 어차피 선택의 다른 한 쪽, 즉 시
인 프로스트가 말한 ‘가지 않은 길’ 그 길을 가 볼 수 없다
는 아주 단순한 이치에 늘 절망할 뿐이지요.
그래도 후회 없는 확실한 선택을 한번 해 보고 싶다면 그
것은 여름날 무조건 우산을 들고 나가는 것과 여자를 선택
할 때 아내를 택하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