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도 될 것이다

 

아직은 구름을 이고 서 있는 비 갠 일요일 아침의 적막한
가로수들 혼잣말처럼 내뱉는 쓸쓸함이나 그 쓸쓸함 옆을
떠나지 못하는 늦은 구월의 풍경들 조붓한 가슴을 흔들고
들어오면 흔들려도 될 것이다.

코스모스 가녀린 허리에 치마를 벗듯 흘러내리는 바람이
바닥을 쓸며 버즘나무 가지에 솟아올라 비밀처럼 묻어둔
순정을 끄집어내거나 수없이 풀었다가 다시 짜 맞추어 이
제 겨우 단정한 매무새로 아물어드는 마음 온통 휘저으려
든다면 그대로 내맡겨 두어도 될 것이다.

어차피 한번은 무너지고 말 가을이려니 회색 판화로 머물
고 있는 먼 산에 눈빛을 기댄 저어새나 지난여름 내내 마
당가에서 비를 맞고 서 있던 저 라일락 모두 태어나 입 한
번 떼지 못한 그 속말 온몸을 실핏줄처럼 타고 돌다가 캄
캄한 밤 젖은 꿈속에서야 툭 터져 버린 그 말 오늘 목청껏
소리치고 싶다면 그 또한 그리하여도 될 것이다.

다만 사랑한다든가 보고 싶다든가 그립다든가 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언어에 눈멀게 하지만 않는다면 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