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한 나의 소견서

 

아름답다, 아닙니다. 물론 향기롭다거나 상큼하다거나 눈
부시게 화려하다는 것은 더욱 아니지요 아직도 그와의 첫
기억에 가슴 떨리는 저의 소견으로는 이 세상에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는 매우 신비로운 우리의 꿈조차 닿지 않는
먼 우주에나 피어날 법한 그러니까 그 어떤 이름도 지니지
않은 맑고 차가운 꽃인 듯합니다 그가.

감정은 아주 잘 얼어 있을 것 같고 부드럽고 촘촘한 잎맥
에 내 입술을 얹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 가늘
고 긴 꽃술을 보아 굳이 씨방을 열어 보지 않아도 언제나
물안개 빛 비밀이 숨어 있을 것 같은 도무지 누구의 근접
도 허락하지 않을 어떤 수식어의 전치도 거부할 다만 천
년에 한 번 정도 미세한 숨으로 나타나 세상 뭇 남자들을
거두어 갈 불길한 바람 같은 꽃말입니다.

혹시나 봄밤 지는 새벽, 나무 전봇대 뒤에 숨어 아침을 훔
치는 시린 여명처럼 붉은 눈물로 그리움 쏟아낼 여리디 여
린 꽃잎이라도 흩날리지 있을까 싶지만 실은 지나치게 단
정하리 만치 절제된 냉정으로 가지런한 가지와 잎을 보이
며 흩어진 사랑과는 화해하지 않는 무섭도록 고고한 꽃입
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침착하게 그에 대한 소견서를 쓰는
것도 머잖아 그의 눈에 스며들어 이제 곧 소멸하고 말 불
쌍한 나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남겨두고자 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