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학교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가을이면 언제나 코스모
스 길이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좁은 천방 둑길은 하
얗거나 빨갛거나 분홍색이거나 한 꽃들로 가득했고 넘실거
리는 꽃물결에 더러 얼굴을 갖다 대 보며 뭔지 모를 그리
움 같은 것에 빠져 보기도 했다.

끝없이 똑바로 이어진 그 길은 여름이면 참으로 지루한 길
이었지만 매미도 들어가고 키 큰 미루나무 잎사귀가 초록
을 털어내면서 양 길섶으로 코스모스가 가득히 늘어서면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없는 생각들이 고추잠자리 떼만큼이
나 수없이 날아다니곤 했다.

꽃잎을 따서 한 칸 건너씩 따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엄
지와 검지로 꽃대를 잡고 파르르 돌려 날려 보내면서 마치
헬리콥터 날개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잔상에 넋을 잃기도
했다. 그러다가 혼자서 꽃더미에 숨어보기도 하고 노란 꽃
봉오리를 입술에 대어 보기도 했다.

꼭 그 때쯤이면 저만치 앞서가는 그 아이가 있었고 내 발
걸음은 의도적이지 않게 느려지곤 했다.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가 언제나 단정했고 교복치마 아래로 비치는 하
얀 다리가 너무 가늘어 마치 코스모스 대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내가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는 그의 하얀 이
마나 볼그스름하게 변하게 될 두 볼이 마치 코스모스 꽃잎
같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살포시 웃어 줄 거라
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그 이름, 이렇듯 길가에 코
스모스 가득 피면 더욱 혼돈스러운 내 마음, 왜 코스모스
의 어원이 ‘질서’인지 그조차도 야속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