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우리 시골에는 봄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겨우내 동네 아
이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던 집 앞 논배미의 얼음이 녹기 시
작했습니다.
무엇에 쓰던 건지 구불구불하게 버려진 철사 줄을 망치
로 두들겨 펴서 판자 조각에 대고 썰매를 만들어 지칠 대
로 지치고 놀던 그 겨울이 끝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먼 산
자락엔 아직 희끗희끗 눈발이 붙어 있지만 해진 구멍 사이
로 스펀지 속이 들어다 뵈는 겨울 점퍼가 거추장스러워지
기 시작하던 낮에도 그래도 못내 아쉬워 썰매를 메고 논바
닥에 나가곤 했습니다. 한 겹씩 옷을 벗듯 얇아진 얼음을
피해 응달진 구석으로 가서 조심스레 썰매를 내려놓고 몸
을 실어 보지만 언제나 몇 발짝 못 가 이내 얼음이 내려앉
았습니다. 허겁지겁 쫓겨 나오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버
리기 일쑤였던 그때의 아쉬움이란 어쩌면 웬 겨울이 그렇
게 짧으냐는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꼭 그렇게 아쉬움이 지나가고 나면 으레 새 학기
가 시작되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잎이 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생명력이 태동하듯 아쉬
움이 지나가며 희망이 자라는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고 버리지 않으면 새로 생기지 않는 세상의
이치라도 가르치듯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는 것
이었습니다. 중국 속담에도 ‘입춘이면 달걀을 세울 수 있
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아마 평상시 잘 안되던 일도 봄
이 오면 그 왕성한 생명력에 힘입어 ‘하고자 하면 무엇이
든지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한 의지는 아
쉬움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버릴 줄 아는 용기, 새로운 환
경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신감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3월입니다. 재잘거림에 하루가 바쁜 학생들뿐만 아
니라 우리 어른들도 겨울 외투의 따뜻한 유혹을 뿌리치고
푸른 기운을 마음껏 호흡하기 위해 가슴을 활짝 펴고 일어
서야 할 새 학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