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고 나면 으레 우리 집 뒤뜰 감나무 잎은 울긋 불긋 홍조가 들기 시작하지요. 여름내 튼실한 살을 올려 초록이다 못해 먹빛이 들던 도톰한 감잎은 그 반짝거리는 윤기만큼이나 햇살을 좋아해서 잎자루 곁에 매달려 있는 주먹만 한 감 알들을 곱게 익혀 간답니다. 그럴 때쯤이면 바람도 시샘을 하여 괜히 가만 있는 가지를 흔들어 보기도 하지요. 손님들도 모두 가고 남은 일손들이 들녘에 나가 지나간 계절들이 품고 있던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하면 먼 걸 음에서 바라보던 감잎은 한 장 두 장 제 몸을 날리기 시작 합니다. 제법 발갛게 익어가는 감 알들을 조금이라도 더 햇살 곁에 묶어 두기 위해 그림자 지우려 하지 않는 것이 지요. 게다가 잎사귀도 발갛게 물이 들어 어느 것이 감이 고 어느 것이 감잎인지 눈 어두운 우리 할머니 허리를 굽 힌 채 이마에 손을 얹으시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또한 못내 미안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가을이 다 갈 때쯤이면 원래 말이 없는 뒤뜰 감 나무, 잎은 하나도 없이 말간 홍시만 가득 매단 채 시리도 록 파란 하늘에 걸려 있곤 하였습니다. 멀지 않은 곳 저만치 산 밑에 서 있는 밤나무가 송이를 벌려 그 동안 잘 익혀 온 알밤을 가차없이 땅바닥으로 내 리쏟은 채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가시와 잎이 엉켜 바 람과 싸우는 것을 보면 우리 집 감나무,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아 늘 욕심처럼 움켜쥐고 놓을 줄 모르는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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