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었다. 외딴 산모퉁이 우리 집은 언제나 미루나무 가 지 꼭대기에 매달린 까치집마냥 뎅그러니 혼자였고 가도 가도 줄어들지 않는 외할아버지 나이만큼이나 동네와 떨어 져 있는 외로운 고도였다. 저녁 나절 한 뼘쯤 되는 마당에 서서 산그늘이 지는 길을 따라 눈을 돌려보면 저 멀리 가물가물 종갓집 굴뚝에서 솟 아오르는 연기가 서럽도록 하얗게 보이곤 했다. 그러면 속 이 상하듯 뒷산으로 쫓아 올라가 썩은 등걸이며 마른 가지 며 나무들을 주어와 군불을 때곤 했다. 마침 바람이라도 북풍으로 돌아서면 아궁이는 뜨겁게 활활 타올라 두꺼운 구들장을 뜨끈뜨끈하게 데워 주는 것이다. 소꿉장난처럼 저녁을 먹고 아직도 뚫어진 장판 사이로 소물소물 연기가 오르는 방안에 앉으면 으레 그 날은 눈이 내렸다. 처음엔 스르르 스르르 추녀 끝에 집 앞 대추나무에 수도간에 춤을 추듯 내리던 눈은 금세 펄펄 쏟아져 빈 마당이며 텃밭 그 리고 우리 집 들어오는 꼬불꼬불한 밭이랑 길을 하얗게 덮 어 버리는 것이었다. 내리는 눈만큼 세상은 훤해지는데 우리 집은 점점 더 세 상 밖으로 떠밀려 내려갔다. 동네도 보이지 않고 먼 산도 보이지 않고 이제 미루나무 위 까치집도 보이지 않는다. 창 호지를 뚫어 붙여 놓은 손바닥만한 유리판이 세상으로 나 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고 나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얼마쯤 일까 풍랑처럼 떠다니던 우리 집 뒤뜰 외할머니가 떠 두신 정한수 그릇에 눈 녹는 소리와 뚜두둑 계곡의 설해목 부러 지는 소리가 한 옥타브를 이루고 더러 짐승소리 낮게 울면 나는 두려움보다 더 큰 그리움에 한없이 잠기곤 했다. 소녀가 보고 싶었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알 수 없지만 저 막막한 설원에 또박또박 발자국을 남기면서 우리 집으 로 들어와 내 손을 잡아주는 서울말 하는 아이의 하얀 얼굴 을 꿈꾸곤 했다. 그리고 겨울이 수없이 지나고 무연히 펼쳐 진 눈밭이 수 만 평이 넘어섰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유년의 그 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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