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는 건
평소에는 찝찔한 뒷맛으로 가까이 하지 않던 녹차가 어 느 때부턴가 왠지 향이 구수하게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입술이 자주 갈 때가 있습니다. 혹은 한껏 멋을 부려보고 싶어도 그 텁텁함에 정이 가지 않던 붉은 포도주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빛깔과 향기가 눈에 코끝에 아름답게 와 닿 으면서 거푸 둥근 잔을 비우게 할 때가 있습니다. 입맛도 변하는가 하면서 커피보다 몸에 좋을 것이라느니 하루 한 잔이면 생활의 활력은 물론 성인병 예방에도 금상 첨화라는 둥 그 동안 멀리했던 미안함을 숨기기라도 하려 는 듯 정당화에 여념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 그리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만 한 술 더 떠서 이 좋은 향기와 이 좋은 빛깔을 그리고 혀끝에 스며드는 그 깊은 맛을 왜 진작 알지 못했는지 안타까움에 가슴까지 쳐 볼 때가 있습니다. 급기야는 미니 홈피의 프로필에 ‘좋 아하는 차는 녹차, 평소에 즐기는 술은 포도주’ 라고까지 바꾸어 놓으며 다도(茶道) 동호회에 와인 클럽에 가입까지 하면서 없는 시간마저 쪼개어 넣는 정도라면 이건 변해도 보통 변한 게 아닙니다. 바뀐다는 것, 그것이 입맛이든 생각이든 오래된 습관이 든 참으로 신선한 것임엔 틀림없습니다. 하지 않던 것을 하는 것, 보지 않던 것을 보는 것, 느끼지 않던 것을 느끼 는 것은 남루한 삶이 새 옷을 입는 것처럼 언제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도 이쯤 되면 분명 그 근저에 말 못할 사 연이 있거나 애틋한 연유가 있는 게지요. 아마도 약을 잘 못 먹어 신체 구성 요소에 이상 변화가 생겼다든가 아니면 마주 앉기만 해도 심장이 멎고 온 몸이 빨려들 것 같은 사 랑의 마술사가 그대 앞에 나타났거나 할 것입니다. 만일 그도 저도 아니라면 지금 창문을 열어 보십시오. 분명 언제 나 저 멀리 아득하던 북한산 능선이 바로 눈앞에 와 있거나 마당가 담장 밑에 파릇파릇한 새봄이 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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