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나는 가끔 길을 잘못 들곤 했다. 어깨에 멘 짐보다 더 무 거운 생각들을 내려놓을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낯선 마을 을 헤매일 때나, 석양을 좇아 무작정 달려나간 바닷가 모 래밭에서도 나는 나의 발걸음을 찾지 못해 혹은 나의 마음 이 가야할 길을 가늠하지 못해 우울하곤 했다. 그럴 때마 다 언제나 시간은 나보다 앞서갔고 나는 그를 붙잡을 용기 조차 없이 온몸을 내맡긴 채 이끌려가다 돌아오는 길을 잃 곤 했다.
어느 날엔 잘 정리된 약도를 들고 마치 답사를 하듯 도심 의 빌딩이나 간판 하나하나에 묵은 의미를 적어 넣으며 정 해진 나의 길을 가다가도 구석진 꽃집 앞 마악 차에서 내 린 싱그러운 백합 향기에 넘어지거나, 아니면 여름날 소낙 비를 피해 엉거주춤 뛰어든 낡은 건물의 현관에 서서 하얀 원피스에 촉촉이 물기가 배어들어가는 젊은 여인의 어깨선 에 눈이라도 닿으면 나는 나의 길에 대한 의미를 곧잘 잊 어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게 되면 잘못 든 나의 길에 대한 연 민의 정으로 밤새 무수한 별을 술잔으로 쓰다듬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도 내 잘못 든 길에 대한 원망이나 슬픔은 없 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시력적 결함에 원인하였다면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분에 넘치는 존재와 사치스런 외로움 에 기인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 저녁, 내가 어둑어둑한 골목 어귀에서 저 언덕 길 꼭대기에 있는 우리 집을 두고 이 마당 너른 기와집으 로 발길을 돌려 담장 밑을 서성이는 것은 저 안에 갇힌 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얀 목련에 대한 애련이나 유난히 목이 긴 이 집 여인에 대한 쓸쓸한 그리움에 연유한다기보 다는 봄밤 전봇대의 희미한 눈꺼풀 때문에 생긴 시력적 결 함으로 돌리는 편이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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