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군에 있는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어린 시절 형님
한테서 날아오곤 했던 누런 편지 봉투처럼 물에 젖어 잉크
가 번지지도 않았고 군사우편이라는 동그란 스탬프도 찍혀
있지 않았습니다. 반듯한 우표 한 장 붙어 막 찍어낸 새
책처럼 우편함에 들어 있었습니다.
반갑기야 그보다 더 하겠습니까만 툭툭 뜯어 열어본 속
에는 온통 불만투성이입니다. 하루 종일 땅만 팠더니 허리
가 아파 죽겠다, 그 무거운 포탄을 들고 다니느라 온 몸이
쑤신다, 밥 먹고 청소하고 고참 뒷바라지하다 보면 하루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른다, 집에 전화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
다 등등의 볼멘소리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이제 막
들어간 신참 놈의 고충이 오죽하겠습니까? 보지 않아도 훤
하고 듣지 않아도 뻔합니다. 그래도 그만큼 견디고 있는
게 여간 다행이 아니지요. 같이 갔던 동료 중에 그 고초를
못 이겨 냅다 도망을 갔다가 한 시간만에 잡혀온 놈도 있
다니 정말 요즘 아이들 인내심이란 약해도 너무 약한 듯합
니다.
모두들 하나 둘밖에 없는 아들이라 금이야 옥이야 키워
놨으니, 옛날 셋째 놈은 언제 군대 갔다 왔는지도 모른다
는 9남매를 키우신 고모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라 해야 할지, 아무튼 그 녀석 그 다음 줄에는 포대 주변
의 풀을 뽑다가 노란 애기똥풀하며 이름 모를 보랏빛 풀꽃
이 너무 아름답더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도심이 아닌 산중
에서 예쁘게 피어 있을 그 풀꽃을 떠올리니 나도 절로 기
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줄
이죠. 고참의 불호령 같은 한 마디가 꽃구경을 하던 녀석
의 등줄기로 떨어지더랍니다. “야 임마, 군대에서는 잔디
말고는 전부 잡초야, 빨리 뽑아.” 하고 말입니다. 마음은
어지간히도 여린 그 녀석 그 날 무척 속상했답니다.
좁은 나라, 문화가 다른 두 곳에 부자(父子)가 흩어져 살
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