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우리 아이는 늘 믿지 않았지만 내가 기차보다 빨랐던 적
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장난감 기차라든가 도화지에 그
린 그림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태우고 달리던 진짜 기차
와의 경주였습니다.
지금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시뻘건 이마에 검은
테를 두르고 가슴엔 태극기와 성조기가 서로 악수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 디젤 기관차가 ‘꽤액 꽤액’하면서 플랫폼을
떠나 철로 위를 달리기 시작하면 화물칸 뒤에 숨어 있던
무리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차례대로 출입구의 손잡이를 잡
고 몇 발짝을 뛰며 따라가다가 올라타는 것이었습니다.
기차는 마치 우리가 올라탈 때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그
제서야 조금씩 속력을 내면서 역 구내를 쑤욱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벼가 누릇누릇 익어가는 들판을 지나
고 좁은 산등성이 사이를 지나고 몇 개의 터널과 다리와
초가집들이 옹종거리고 앉아 있는 마을을 지나 한참을 덜
그럭거린 다음에 어둑어둑해진 작은 역에 도착하는 것이었
습니다. 물론 우리는 올라탈 때와의 역순으로 기차가 역
구내에 들어가기 전에 타다닥거리며 뛰어내렸습니다.
흔들리는 간이역사의 불빛이 아련한 추억 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참으로 아찔하고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
니다. 학창시절 한 달 패스(승차권)를 끊기가 어려워 가끔
씩 몰래 타던 기차와의 경주였습니다.
그래도 기차가 달리는 동안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분이
좋았고 가끔씩 신작로를 타박타박 걸어가는 여자 아이들이
나 땡땡거리는 건널목 앞에 멈춰선 낡은 버스 차창으로 비
치는 하얀 교복 깃, 철둑길을 걷다가 기차소리에 놀라 비
탈로 내려선 채 두 귀를 막고 서 있는 아이들을 보곤 소리
를 질러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공책을 찢어
주소와 이름을 쓴 쪽지를 훠이 날려 보기도 했습니다. 누
구인지도 모를 먼 동경에로의 구애였고 가슴은 늘 설레었
습니다.
그러한 몇 번의 기차와의 경주가 끝나고 내 기다림도 지
쳐 말을 잊어갈 때쯤이면 꼭 낯선 여자의 이름으로 한 통
의 편지가 가을처럼 오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