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책
상 위에 놓인 둥그런 지구본을 들여다보면서 해는 어디서
부터 뜰까 하는 생각에 골몰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리
저리 아무리 돌려보아도 여기서부터가 시작이구나, 할 만
한 신비로운 땅은 눈에 띄지 않은 채 대륙이나 바다나 모
두 하나로 붙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 때 생각은 적어도
시작이 되는 곳, 아침 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건너
뛰기 어려운 깊숙한 계곡이 있어서 해가 지는 곳과는 확연
한 구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그 답답한 의문
이 어떻게 보면 우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만 그 땐 참 심
각했습니다. 어찌되었건 훗날 저의 이 골치 아픈 문제를
미리 정리하기 위해 고명한 선각자들이 경도라는 선을 그
어 인위적으로 시간의 출발점을 만들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영 탐탁치가 않았습니다.
머리가 나쁜 탓이었을까요. 그 후에도 이 둥근 지구에
관한 고민은 그치지 않았고 연속된 시간에 대한 자의적 구
분을 단행한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날이 바뀌
거나 해가 바뀌어도 일어나 보면 분명 어제와 다르지 않은
평상이 눈앞에 전개되는데 말입니다. 그나마 하루가 바뀌
는 것은 그렇다치고 적어도 한해가 바뀐다면, 지난해와 새
해와의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
까? 예를 들어 섣달 그믐날엔 세상이 온통 캄캄하고 적막
한 암흑천지에 빠져 한 삼 일간 계속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새해 첫날이 되어 아침 창을 활짝 열
면 삼라만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서 그 무연히 펼쳐진 풍경
에 가슴 벅찬 감동으로 첫날을 시작한다든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 속에서도 또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
무리 우겨도 시간의 경계는 어쩔 수 없이 지나온 것 같습
니다. 처음과 끝은 늘 한 곳에 있기 마련인 것을 그것도
알지 못한 채 거창한 마감과 화려한 시작을 위해 쓸데없는
미련을 두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