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문 밖 들국화

 

우리 집은 대문이 없었습니다. 동네의 맨 끄트머리 산자
락 아래 언제나 저녁 해 그늘처럼 앉아 있는 낮은 초가집
이었던 우리 집은 헛기침 하나로 문이 열리는 길가 집이었
습니다. 섭이 형이나 지만이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나무하
러 산으로 오를 때나 산비탈 천수답에 물을 대러 가는 훈
이 할아버지나 모두, 둘이 비켜서기조차 힘든 조붓한 밭둑
길을 따라 우리 집 앞을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집은 부엌이나 마루나 안방이나 심지어 뒷간까지도
훤히 보이는 매우 투명한 집이었습니다.
언제나 마루 끝에 앉으셔서 오가는 이를 불러들이시는
끝없이 심심하신 할머니야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집
이었지만, 나의 소원은 우리 집에 대문을 다는 일이었습니
다. 어쩌다 저녁을 먹고 아랫동네 지만이네 집으로 마실을
가면, 없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이지만 떠억 하
니 닫아놓고 내가 밀치면 그제야 꺼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묵직한 대문이 나는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내가 그런 소리라도 하면 어머니는, 나뭇짐이 들어오거
나 밭에서 깻단이라도 이고 올 때면 대문이 없으니 걸리적
거리지 않고 얼마나 좋으냐며 웃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
가 밉기도 하고 좋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좀 든 어느 날, 싸리나무를 한 짐 베어
다가 서너 뼘 높이나 될만한 사립문을 달았습니다. 뭐 바
람만 불어도 열릴 듯한 볼품없는 문이었지만 그래도 안과
밖에 경계를 만든 것 같아 나만의 세상에 든 듯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날 저녁 늦게 밭에서 들어오시던 어머니,
그 사립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길가에 들국화가 활짝 피
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집 밖에 온통 하얗게 들국
화가 지천이었습니다. 언제나 가을이면 저녁마다 마루에
앉아 앞뒤로 천지가 하얀 들국화를 바라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던 우리 집, 고된 어머니의 일과가 밤마다
하얀 꽃으로 피어나던 집, 대문이 없어도 참 좋았던 우리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