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歲暮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70년대 초쯤에는 명동 중앙극
장 뒷골목이나 무교동 혹은 종로2가 뒷골목 등에 가면 소
주와 막걸리를 팔면서 노래를 부르는, 요즘으로 치자면 라
이브 카페 같은 술집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무대라고 해 봐야 반 평쯤이나 될까, 마이크 하나를 세
우고 사람 하나가 올라가면 그만인 낮은 단상이었고 주로
통기타를 치는 무명 가수들과 그들과 한 가문인 무명 관객
들이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지금처럼 빡빡하고 절제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막
걸리처럼 텁텁하고 불그스레한 백열전구처럼 따뜻하기만
한 분위기였습니다. 술을 판다기보다는 통제된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듯 손님의 청은 아랑곳도 없이 무대 위에
올라가 한 곡조 뽑고 내려오는 마담의 긴 치마도 미울 리
가 없었습니다.
열 한 시면 언제나 문을 닫아야 하는 그 술집, 바깥에 찬
바람이라도 불고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이 오버코트 깃이라도 세우는 때쯤이면 손꼽아 기다려지는
것이 연말연시였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해가 기울면 어차피 한 살 더 나이를
먹어야 되지만 그건 아랑곳없고 마냥 12월이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캐럴 송과 자선냄비의 종소리, 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 색색의 예쁜 카드 등 흥청거리고 들뜬 세모(歲暮)
의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 이브와
31일 날 밤의 환상적인 해방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루 중 네 시간은 정부에 반납하고 살았던 통제 시대에
단 이틀 그 밤만은 통금이 해제되고 잃어버린 네 시간을
돌려받아 마음껏 쓸 수 있었던 짜릿함. 이런 감정을 경험
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았던
것이 자랑스럽기조차 한 기억, 밤새 골목마다 물밀듯이 밀
려다니던 젊은이들의 물결, 그 거대한 힘에 끌려 12월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발 그만 좀 찾아왔으면 좋을 12월이 왜
이렇게 빨리 다가오는지, 봄꽃 본 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12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