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꿈

 

지금은 난방 시설이 너무 잘 되어 있어 사무실마다 따뜻
한 온풍기가 계절을 잊게 하고 있지만 차가운 겨울의 추위
를 녹이는 데야 아무래도 난로가 제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던 마룻바닥 교실에서 장작불이 훨훨 타오
르는 난로 위에 겹겹이 도시락을 올려놓고 기다리던 추억
쯤이야 이제는 사오십 대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겠지만, 주
먹만 한 갈탄을 뭉쳐서 태우던 무쇠 난로라든가 아니면 구멍

마다 파란 불꽃을 피워 올리는 연탄 난로 그리고 아직은 명
맥이 유지되고 있는 석유 난로도 자꾸만 두 손을 비비며 다
가서게 만드는 달콤한 유혹을 지니고 있음엔 틀림없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한 채
책상 앞에 앉아 난로 쪽으로 시린 손만 자꾸 뻗쳐가며 밀
린 일거리에 정신을 빼앗길 때면, 내리는 원두커피 냄새나
난로 위의 고구마 냄새나 좋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구수
함에 이끌려 잠시 정신을 놓다가 우연찮게 창 밖으로 눈길
을 돌리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 12월의 잿빛 하늘에 온
통 하얀 눈발이 가득하다면 어떨까요?
이미 길바닥은 보이지 않고 지붕이며 나뭇가지며 지나가
는 차들까지 모두 하얗게 변해 있다면, 아이들은 벌써 이
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고 하늘에선 손을 흔들 듯 춤을 추
듯 눈송이들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면, 세상의 모든 소
리가 멎은 채 오직 무성영화처럼 벌어지는 창 밖의 푹신푹
신한 풍경에 아마도 탄성 내지는 흥분된 가슴을 쉬 억누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그 때쯤 책상 위에 전화벨이 울리고 “자기?
나…….” 아니면 “김 선생님, 창 밖에…….” 하는 미끄러
지듯 귓전에 스며드는 감미로운 음성이, 캐비닛 위에 올려
놓은 묵은 카세트 라디오에선 김추자의 ‘눈이 내리네.’가
흘러나오고…….
훨훨 타오르는 난로 불처럼 따뜻한 그 사람의 가슴에 묻
혀 하룻밤쯤 나를 잊었으면 하는 세모의 꿈이 오늘도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