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작은 이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민이네가 있습니다. 학교 동창
도 아니고 직장 동료도 아니고 친척은 더욱이 아닙니다.
그저 세상 여느 사람처럼 복잡한 도시에서 이웃으로 거쳐
간 집입니다. 그런데 그런 민이네가 내게 특별한 것은 우
리가 이사를 떠나고 난 후부터 꼭 이맘때 정월 보름쯤이면
전화를 하거나 그냥 불쑥 나타나 내게 변함없는 한 해의
화두를 던져주고 가는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이 객지에 나
가 있던 자식들에게 꼭 음력 정월 보름은 집에 들어와 쇠
고 가라고 하시던 말씀이 떠오르듯 그 보름 전후에 연락이
오는 것입니다.
얼굴에 늘 웃음뿐인 민이 아빠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
가 조금 불편합니다. 귀금속 세공을 하며 살아가는 그는
집안 형편도 그리 넉넉지는 않은 편입니다. 비슷한 처지의
아내와 사이에 아들 딸 둘을 두고 있지만 우리와는 사뭇
사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돈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아이들 공부도 잘 하지만 그리 큰 기대를 두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 또한 또래의 관심과 시
샘이 있을 법한데도 조금 더 평수 너른 우리 집에 대해서,
즐겨 노는 TV나 게임기 등에 대해서도 부러움 같은 건 찾
아볼 수 없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집 식구들을 만나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아니
한 해가 행복한 것 같습니다. 얘기의 주제야 늘 건강이라
든가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자잘한 에피소드, 더러
는 이미 시중에 파다한 우스개 소리 등에 불과하지만 비워
내는 술잔이 아내에게도 밉지 않은 듯 그 자리는 늘 즐겁
습니다.
아등바등 사느라고 다 찌그러진 내 얼굴에 화색이 돌아
활짝 펴질 때쯤이면 임무가 끝났다는 듯이 황급히 자리를
일어서는 민이네는 ‘그냥 이렇게 웃으며 살면 다 행복하
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 주는 하느님의 메신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월이 다른 달보다 작은 이유는 이렇듯 조금은 부족한
듯 살아가는 것이 더욱 행복하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