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월

 

가을입니다, 이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내 곁에 슬
며시 다가와 부드러운 손을 어깨에 얹으며 먼 산을 바라보
는 그이의 그윽한 눈빛처럼 가을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가끔은 이른 잎새를 떨어뜨리며 그림자 늘여 놓는 플라타
너스도, 조금씩 진초록의 겉옷을 벗어내고 있는 길가의 은
행나무도 그리고 그 가지에 숨어 며칠 전 튼실한 새끼들을
창공으로 내어 보내고 난 뱃새도 지난여름 우리들의 그 호
들갑을 입에 담지 않고 있습니다.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지독한 더위라느니 체온을 넘기는
열대야에 온 도시가 찜통이라느니 웃통을 벗고 술병을 굴
리며 공원이나 강변 둔치에서 마치 피난이나 온 것처럼 난
리를 치던 그 간사함에 눈 하나 아니 홀기고 있습니다. 그
저 어제 아침과 똑같이 오늘 아침이 온 것처럼 제 시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는 것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을
은 우리를 대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좀 진득이 참아도 볼 것을, 묵묵히 기다
려도 볼 것을, 어김없이 다가올 시간들을 차분히 맞이할
수는 없었을까요?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후회도
하지 마십시오. 저 높고 넓은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자의
눈으로 보면 우리들의 처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아니
특이한 우리들의 유전자 구조상 반드시 그렇게 해야 여름
이 가는 줄로 알 것입니다.
어쩌면 이제 곧 다가오는 추석 명절, 또 한번의 난리를
치고 소동을 벌인 다음에야 올 겨울도 탈 없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저 마음 편
하게 하실 것 다 하시면서 오는 시간 편안히 받아들이십시
오.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흘러가는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