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봉선

물봉선

 

 

옥녀봉 저고리를 벗듯

하얀 산안개 피어오르는

죽령 옛길을 가다

볼그스름한 물봉선*

숨어사는 비밀을 보고 말았다

 

가물가물한 옛날

지필묵 봇짐을 메고 한양으로 떠났을

으름나무 줄기보다 질긴 그리움

세상에 내놓기 싫었다

 

초롱꽃 불을 켜고

달맞이꽃 밤마다 기도를 해도

전나무 숲이 너무 깊어

피지 못한 사랑이었다

 

혹 그 긴 기다림에 붙잡힐까

두려움에 발길 재촉하여

허겁지겁 고갯마루에 오르니

자욱한 안개비속에 눈빛 젖은 여자

보랏빛 물봉선 거기 또 있었다

 

 

 

* 물봉선 : 봉선화과에 속한 일년생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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