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칠장사


칠장사의 가을은 지금 묵언 중이다

법당 한쪽에 들어앉은
동종도 고개를 숙이고 있고
처마 끝에 메 달린 목어도
눈을 감고 있다

동자승이 빗질을 한 듯
하늘은 칠현산 가장자리에
구름을 밀어 놓은 채
쪽빛을 풀고 있고

선방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한 켤레 위에는
햇살도 시간도 멎어있다

나한전 앞에 촛불을 켜고
엎드려 두 손을 모은 불자도
고욤나무 아래 허리를 굽힌 채
부처의 말씀을 줍고 있는 중생도
모두 말은 없고 고요한데

해소국사가 대숲에 새겨놓은 법어만
대웅전 마당으로 내려와
들릴 듯 말 듯 풍경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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