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바리
눈밭이다 아침해도 하얗게 물이 들어 넘어오는 눈(目)이 모자라는 눈밭이다 나뭇가지에 겹겹이 피어오른 눈꽃이 환상의 무게를 못 이겨 떨어져도 부서진 몸뚱이 아프지 않은 눈밭이다
바깥바람을 싣고 오던 기적소리도 발목을 묻고 멈춰 서 버린 산골마을 산자락을 붙잡고 옹기종기 앉은 지붕에는 겨울의 키만큼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속 맑은 고드름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자라나고 있다
수백 년을 한자리에 서서 이 마을 흑백의 영욕을 말없이 지켜본 늙은 소나무는 오늘도 하얀 새 옷이고 길을 더듬는 외인의 마음도 눈밭에 빠져 하얀데 비탈진 언덕 밑에 파릇이 고개를 내밀고 선 山竹만 색을 벗었다
지난날 달빛마저 검게 내리던 계곡으로 꺼질 줄 모르고 피어나던 유바리* 사람들의 꿈처럼 끝없는 눈밭에 한 점 초록으로 피었다
* 일본 북해도에 있는 폐 탄광도시로 지금은 국제영화제가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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