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삼엽충 영전에

 

선생께서 가신지도 어언 2억 5천만년이 되었습니다
6억년 전 이 땅에 미물이 생명을 얻기 시작 할 때
선생께서는 처음으로 눈을 가지셨습니다
광막한 바다를 밝히고 질서를 바로잡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선생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면서
온갖 미물들이 다투어 눈을 가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빛은 곧 어둠인 것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어찌 몰랐습니까
선생의 바다에서 욕심에 찬 양서류가 상륙을 감행하고
파충류가 등장하면서 3억년을 이어온 장대한 선생의 꿈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땅이 뒤틀리고
선생의 드넓은 바다는 육지가 되면서 다시 세상은
혼미해 졌습니다, 그로부터 2억 5천만년
이 긴 세월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인간이란 미물 또한
아직도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보아도 볼 수 없고
보지 않아도 보여지는 기능상실에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선생의 2억 5천만년 째 기일에 즈음하여
처음 눈을 가지신 선생의 초심을 헤아리며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아픈 곳과 시원한 곳을
두루 볼 수 있는 깨끗한 눈 하나를 얻고자
선생의 영전에 머리 숙여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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