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스러지다

 

바람 불지 말 일이다
그런 귀한 손길로 세상을 마감하는 일은
사치스런 임종이다
살아있는 동안 온갖 욕정이 다 타올라
그 아름답고 정숙한 바다에서
어둠을 훔쳐 가던 일이 부끄러울 뿐이다
때로는 보라 빛 그물을 펼쳐놓고
빛 바랜 교회의 철탑을 건져 올리기도 했고
산사에 숨어든 정적을 접어내기도 했다
빌딩의 유리창이 만들어 내는
뒤바뀐 풍경도
간혹 이 식성 좋은 유혹에 옷을 벗곤 했다
아무도 검게 탄 심지는 보지 못한 채
순순히 그 빛나던 어둠을 내어주고 있었다
이 비옥한 땅에서 평화롭게 자라던
당당한 불빛도 마감 임박한 시간 앞에
이제 그 주렁주렁 매달린 흉장을 내려놓고
돌아설 일이다
제발 바람 불지 말 일이다
그냥 제풀에 쓰러질 일이다
어차피 돌려 줄 어둠이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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