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전상서
하느님 전상서
진홍빛 노을이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저녁입니다. 바람조차 고운 하느님 솜씨인줄 알고 있습니다만 왠지 눈시울이 젖어오는 건, 조금 전 시장 골목 에서 나물 한 줌을 놓고 자꾸 제 옷자락을 잡던 남루한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어둠이 올 터이고요 그림자 보다 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딘가 컴컴한 언덕길 작은 쪽방으로 스며들겠지요. 못다 판 나물이 별빛에 시들고 누런 냄비에 식은 밥이 코를 골아도 할머니는 푸념푸념 잇몸으로 삼키실 겁니다. 방안 어디엔가 한때의 단란함이 묻은 사진 한 장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은 꺼내보지 않으실 것이며 꼬기꼬기한 지폐 두 장과 동전 몇 닢을 꼭 쥐고 운명처럼 주무실 겁니다. 언젠가 돌아가 누울 목관 보다 조금 더 큰 방 한 편에 비록 불은 들어오지 않더라도 제발이지 웬수같은 아들이 버리고 간 네 살짜리 손주녀셕 만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느님, 저의 하느님, 혹시 오늘 저녁 몰래 제게 주시려던 복이 있다면 할머니의 머리맡에 두고 가시기를 두 손 모아 비옵나이다. 언제나 한기가 가장 먼저 드는 할머니의 쪽방 문에 내일 아침은 햇살이 먼저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저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가요 하느님께서 요즘은 다른 별을 살피신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한없이 나약한 저희를 놓지 마십시오. 저희가 두렵습니다.
주 : 이 편지는 반송되어 왔다. [수취인이 발신인의 마음속에 사는 것으로 확인 됨]하는 우체국 소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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