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으로 사는 세상

정으로 사는 세상

 

 

나는 외롭다

잠 안 오는 밤

막막한 달빛이 불러내는

마당에 서서

소리 없는 소리로

울음 없는 울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을 때나

 

하염없이 비 내리는 날

어긋난 문살을 잡고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그 치렁치렁한 장단과

촉촉한 감촉에

그의 입술을 떠 올렸을 때나

 

북풍이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날

꽁꽁 얼어붙은 연민과

그리움과 내 안의 한파와

한 바탕 치열한 싸움 끝에 차지한

따뜻한 아랫목에서

그의 눈부신 살결을 생각하였을 때나

모두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오늘 밤

여기 정으로 사는 세상에서 만난

너와 나 나와 너

마주잡은 두 손이 너무 따뜻하여

잠시 잊고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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