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이야기
여름밤의 이야기
우리는 달빛 자자한 교단 위에 둘러앉았다. 운동장의 하얀 모래는 아이들 얼굴처럼 빛나고 모처럼 가슴을 털어 내며 추억 줍기를 하였다. 술잔은 어느덧 넘쳐버린 나이처럼 넉넉했고 웃음은 색깔보다 넓어 보였다. 가끔씩 저 구석진 느티나무 측백나무 컴컴한 그림자가 주고받는 이야기, 바람으로 흔들거렸다. 넓은 들 키를 고른 볏잎 위로 민갈거미 수런수런 은빛 올을 깁고 있고 그 옆을 경원선 느린 기차가 낮은 목소리로 비켜가곤 하였다. 우리는 무제한의 자유에 상심했다. 밤잠을 설치던 매미 몇 마리 고향에서 올라온 담배 연기처럼 꾸역꾸역 목을 삼키다가 푸르르 교문 옆으로 날아가자 가던 이야기를 잠시 세웠지만 이내 그리움이 재촉하였다. 몇 순배를 돌아 나온 술잔에는 희끗한 머리칼이 묻어나고 흐린 가지 사이로 추운별이 쏟아지던 어린 밤을 유창한 세월이 회상하고 있었다. 여름은 속이 넓었다. 햇볕이 기르던 교실 앞 화단 칭얼대던 풀벌레도 풀어놓은 달맞이꽃도 그날 밤 우리 젖은 사투리를 즐겨 들어주었다. 우두커니 서있던 외줄그네 몇 행비 몸을 흔들고 맨살에 앉은 모기 졸음에 지쳐 툭툭치는 부채소리 듣지 못할 즈음 우리는 주인 없는 연천의 여름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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