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풍에 흔들리는 풀잎

흔들려 더 아름답지 않은가

하늘도 가끔 내려와 앉았다 가는

그 속삭임이

흔들려 더 황홀하지 않은가

 

사랑은 또 어떤가

긴 입맞춤도 붙들고 지킬 수는 없는 것

사라지면 그 짧은 멈춤에 대한 연민과

연민이 불러내는 그리움의 상처들

아름답지 않은가

그러니 간간이 서풍을 타고 오는

분 냄새에

잠시 마음 빼앗긴들 무어겠는가

 

더구나 오늘처럼

늦은 저녁에 마주 보는 눈빛

곱게 머리를 풀고 누운 안개처럼

끝 모를 깊이에 출렁이는 밤

바람 불어 더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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