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가고 싶다

 

내 어릴 적 그 커다랗던 교실에도 장마는 있었다
파란 비닐우산에
친구랑 둘이서 겨우 머리만 비집고 학교에 가면
우리 교실 교단 옆에는 의례 비가 새고 있었다
얼른 찌그러진 양철 바케스를 갖다 받치면
탱∼ 탱∼ 하고 떨어지는 그 첫 방울 소리가 어찌나 맑던지
그러나 그 소리는 이내 퍽 퍽 하고 둔탁해 졌다가
바닥에 차츰 물이 고이면서
퐁 퐁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아이들 소리 까르륵거리고 새는 곳 늘어나
주전자에 대야에 물조루까지 갖다 받치다보면
그때 꼭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이 가난한 조국의 장래를 아이들 어깨에 지움이 늘 미안한
선생님의 열정은 축축한 교실의 습기를 다 말리고 있지만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귀에는 언제나 고 신기한
실로폰 소리만 들렸다
핑∼ 통 토동 탁탁, 토도독 퐁퐁 퐁∼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바람이라도 심술궂게 거들면
아이들은 또 우르르 교실 한복판으로 몰리곤 했다
깨진 유리창에 발라두었던 문 종이가 퍽 퍽 하며 터지고
개구쟁이 같은 빗방울이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창가에 앉은 아이들 책상에
그 아까운 책에 공책에 박치기를 해대면 금새 교실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선생님 얼굴에 근심이 차도 아이들 얼굴에는 늘
장난기 가득한 맑은 웃음만 까르륵거리고 있었다
바케스를 몇 번 비워내도 비 그치지 않으면 선생님은 의례
"겅정 아아들은 책보 싸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키 큰 두남이, 상경이, 영균이, 명자는
땟국이 졸졸 흐르는 보자기를 꺼내
책이며 공책이며 연필 통을 꼭꼭 눌러 싸 가지고
여자아이들은 허리춤에 남자아이들은 어깻죽지에 단단하게
돌려 묶고는 출정 채비를 하곤 했다, 선생님은
"거랑에 물 넘기 전에 빨리빨리 집에 가라" 하고
제일 큰 두남이에게 단단히 이르고는 공부시간에
먼저 내 보내는 것이었다
하 참, 고게 얼마나 부럽던지
찢어진 우산에, 삿갓에, 쪼그만 몸뚱이들을 집어넣고는
찰파닥거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겅정 아이들을 보면 말이다
오늘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에 장마비가 유난히 짙다
이렇듯 빗줄기 점점 굵어지면 나는 집엘 가고싶다
헌 책보를 매고 내 유년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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