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아침부터 창밖은 늘어진 흑백영화다 우산 속의 아이도 종종걸음이고 빗길 자동차도 구성진 음색이다 가끔씩 뻥뻥 뚫어진 화면으로는 무료한 시간만 튀었다 사그라진다
갈 데도 없이 칙칙한 손잡이만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검열에 용케 빠진 난해한 장면이라도 기대해 보지만 수북한 잿더미에 담배꽁초만 꼼지락거린다
아무래도 오늘은 열리지 않을 풍경 같지만 햇빛 한 줌 훔쳐두지 못한 아쉬움이 은막에 숨은 그림자처럼 빗물 위에 일렁인다
물방울에 터진 마음 치렁치렁 흘러내리는 날 유리창에 매달려 백열등에 차임벨 기다려 보지만 무엇이 서러운지 오늘은 하루종일 연속상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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