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고도 (孤島)
어둠이 꽃처럼 피어나는 후미진 언덕에 눈발이 숭숭 내립니다 저마다 가난을 숨기느라 헉헉대는 도시의 불빛도 이 곳에선 벌거벗은 유리관 허약한 실핏줄이 선명합니다 아침마다 다시 올라올지 몰라 조심스레 내리 딛던 입술 터진 계단들 궁색이 줄줄 흐르지만 반갑기만 할뿐입니다 깨어진 스레트 색 바랜 무각의 창문 안에서는 양은 소반에 숟가락 놓는 소리 정겹고 획이 떨어져 '수피'가된 정씨네 가게 앞 키 닿는 처마엔 벌써부터 소주잔에 한강 물이 튀깁니다 니탓인지 내탓인지 보름인데 길은 어둡고 일당 거머쥔 손끝에 눈물이 맺힙니다
백열등 희미한 천장에 걱정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집 눈썹 매운 바람이 풀풀 거립니다 낯선 여자의 귓볼에 꼼짝할 수 없어 더욱 달았던 내 무능력은 아직도 전철 속에 있고 속상한 장작불만 불티를 내는데 찌그러진 세숫대야에 얼굴이 빠집니다 백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뛰어나올 마루가 없어 문지방에서 깡총거리는 녀석 내 땀내 좋아 기웃거리는 마누라 시름보다 웃음이 많아 벽에 붙은 도화지에 별 늘어나지만 우리 집 고도 아직 뭍에서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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