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가을에 내리던 황금빛 햇살도 완강히 저항하다 기어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묵은 색 낙엽 위에 얹혀간 후 찬 서리로 돌아온 것을 알고 있다 여름의 무성하던 숨소리는 어떤가 쏟아지는 소낙비에도 꺼지지 않을 것 같던 마른 불꽃같이 활활 타오르던 정열도 사랑의 짤막한 눈빛에 스러져 푸른 목숨을 다하지 못하였다 무엇이든 온전히 두지 못하는 사랑은 지친 날도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외로움 보다 더 무서운 정월의 달 빛 보다 더 차가운 불덩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것을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잔인한 사랑에 스스로 무너져 서로의 가슴에 흔적 없이 스며들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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