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의 하늘은 수줍다 석탑을 돌아오는 느린 저녁 햇살 때문은 아니요기도소리 다 못 헤아리는대웅전의 푸른 기와 탓도 아니다묵묵한 범종각 뜰에서누구를 기다리고 서 있다가이제사 분홍색 꽃잎을 접는 봉숭아 때문도 아니고요사체 지키고 앉아있는 흰둥이의 굵은 눈망울 때문은 더욱 아니다더구나절 집 마당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감나무 탓은 물론 아니요손 깍지 꼭 낀 채 돌아서서 살며시 입술 나누고 있는 낯선 두 사람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