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환승 계단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흘러가는
너와 나의 인연은 무엇이냐
향기 짙은 머리 결이나 살짝 위로 치켜든
눈 매무새가 낯설지 않은 얼굴
어디선가 한번은 만났을 것이다마는
오류동 산 27번지에서 먹고 내려온 아침이
벌써 힘을 잃어 기억이 문을 열지 않으니
오늘은 모른 체 하기로 하자
열고 또 열어도 끝없이 마주치기만 하는
세상의 문 앞에서
언제나 막막한 너와 나는, 봄날
거리를 배회하는 수양버들 꽃씨처럼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누구의 쓸모에도 들지 않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숨만은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
오늘 아침 너와 나의 짤막한 스침에
또 한번 나이테를 풀고 가는 것이리라
행여 눈 먼 행운이라도 따라
저 황금빛 바다에 던져진다해도
너와 나의 가슴은 더욱 허전할 것이니
또 어느 우주의 귀퉁이에서
한참을 서성인 끝에 만날 것이다마는, 그땐
겹겹이 눌려 더욱 납작해진 인연의 보따리
다 풀어 제켜 놓고라도
우리 모른 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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