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끼, 오늘 오후에 죽다
자태는 참 고왔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목덜미가 붉고 검고 또 푸른 옥빛을 번갈아 가며 내는 모습은 정말이지 탐이 날 정도였다 내 6층 사무실 건너편 낮은 옥상에 몇 일 전부터 장끼 한 마리가 나타나 잔뜩 폼을 잡고 있다 처음엔 주눅이 줄줄 흐 르더니 차츰 동작도 제법 커져 오늘은 아예 내 심심한 시선을 알아차렸는가 난리 가 아니다 발목이 묶인 주제에 푸드득 날아올라 보기도 하고, 팽팽한 햇살 을 노려 보다가 부리로 깃털을 몇 번 문지르고는 큰 걸음으로 저벅 저벅 난간으로 다가가 힘차게 뛰어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번번이 빈 날개만 퍼덕이다가 겨우 난간 끝에 코를 박고 뒤로 나 동그라질 뿐 그 자태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짓, 그 러나 그것이 그의 목숨을 건 애절한 탈출이었음을 안 것은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빼곡이 열린 옥상 집 주방문 사이로 중년의 사내가 냄비에 물을 끓이며 날짐승의 털을 뽑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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