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허상

여름의 허상

 

 

여름엔

우산을 준비하지 마십시오

어쩌다 시커먼 먹구름이 용틀임을 치며

머리 위를 맴돌아도 두려워 마십시오

그렇다고 햇빛이 쨍쨍한 정오에

가로수 그림자 징검다리를 만드는 하늘 또한

너무 믿지는 마십시오

알 수 없는 허상일 뿐입니다

 

그러다

성질더런 사내처럼 포악한 빗줄기가 내리 쏟아져도

흔들리거나 피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누구에겐가 선택된 사람, 오히려

꿋꿋하게 그 짜릿한 절망을 즐기십시오

가급적 오래 축축한 물기를 경험 하십시오

금방 말라버릴 가슴

그러나 아쉬워 마십시오

 

어차피

사랑은 그렇듯 무자비하게 당도하였다가

비갠 뒤 혼자 든 우산처럼

겸연쩍게 사라지는 것이거늘

여름엔 우산을 준비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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