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지하도
동십자각 지하도
맑은 봄 날 아침
광화문 동십자각 지하도를 걷고 싶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
공원 잔디밭 이름 모를 들풀의
분홍 빛 얼굴이 그대로 비치고
자유로운 시선과
무례한 발걸음이
마음껏 옷을 벗어도 좋을
이른 아침이면 더욱
에스페레소 커피향이
계단을 따라 내려 올 때 쯤
상평통보 네모 속에
멈추어 있던 시간이 손을 내밀면
그동안 세월을 잘 쓰지 못한 얼굴 하나
환한 웃음을 짓는 곳
채곡채곡 부끄러웠던 시간을 바꾸어 가는 곳
그 조용한 동십자각 지하도를
아무도 몰래 나 혼자만 쓰고 싶다
건너편 끄트머리에서
때 묻은 시간을 치우러 들어오는 청소 아줌마가
맑은 봄볕에 날 알아차리지 못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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