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비둘기

 

광화문 비둘기는 날개가 크다 자회색의 윤기가 조르르 흐르는 깃털은 겉으로만 보아도 범상한 집안이 아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과자를 던져주어도 수준에 맞지 않는듯 힐끔거리기만 할 뿐 영 관심이 없다 더욱 못 참을 일은 내가 쫓아가 잡으 려해도 요리조리 자리만 옮길 뿐 도무지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것이다 가끔 사직동 이나 효자동 족에서 몇 마리가 더 날아오면 분수대 옆에 모여 앉아 고개를 분주히 돌려가며 무슨 얘기인가 열심히 주고받는다 그러다간 또 무엇인가 맛있게 주워 먹곤 한다 더러 서대문 쪽 비탈진 바람을 타고 등이 왜소한 비둘기 몇 마리가 날 아와 동석이라도 하려는 듯 기웃거리지만 광화문 비둘기는 그 큰 날개를 퍼덕이 며 근엄한 자세로 물리치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광화문 비둘기는 날개가 큰데도 세상은 좁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그 윤기 나는 자회색의 날갯죽지 밑으로 매연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그리 오래 살지 못 할 것 같은 광화 문 비둘기는 오늘도 무엇에 눈이 어두워 세상 멀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 못하 고 청기와 집 가까운 광화문에만 붙어산다




| 혼자 걷지 않아야 한다
| 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