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울
동두천 조금 지나 초성리에서 오른쪽으로 굽어 들면 열 두 개울이 있습니다. 온 산에 눈이 가득한 날 찾아가 면 더욱 운치 있고 자동차에 기름이라도 달랑달랑하면 더 제 맛입니다.
초입의 구멍가게를 지나 오른쪽에 있는 군부대를 보면 위병들이 서 있는데 꼭 누구네 아버지 옛적 모습 같습니 다. 아직 군기가 들어 뵈는 자세는 해가져도 잘 보입니 다. 흰 눈 때문만은 아닙니다.
열 두 개울이라 해서 개울만 세지 마십시오. 지금은 다리를 놓아 셈하기 힘들 뿐 아니라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인 날이면 더욱 숫자는 희미해집니다. 그저 하얀 산만 바라보면서 올라가십시오.
건너편 산 자락이 좀 가팔라 보이고 큰 나뭇가지에서 눈꽃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쉬워 말고 숨을 조금 고르 십시오. 오른쪽 언덕 어디쯤 허름한 오두막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장작 타는 냄새가 나고 아저씨 사투리에 경상도 쪽 가 락이 배어 있으면 맞습니다. 쉬어도 좋을 곳입니다. 쪽 문을 열고 뒤로 나가면 하얀 눈 마당이 있는데 드러눕고 깡충거려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초막 구석에 만들어 놓은 온돌 위에 둘러앉아 막걸리 잔에 도토리묵 안주라도 있으면 시끌벅적한 세상 이야 기도 괜찮습니다. 고만고만한 부부끼리 왔다면 흠뻑 취 해도 좋습니다.
덤으로 막걸리 반되를 더 내어 주는 아주머니와 장작 불 옆에서 졸고 있는 강아지가 너무 푸근하기만 한 것은 여러분이 남보다 가난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마음 상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가진 것 없어 지지고 볶고 살면서도 마음만은 넉 넉한 사람들이 일년에 한 번 큰맘먹고 만난 날, 이 깊은 산 속 열 두 개울을 찾아 준 호사에 하느님이 기뻐 주신 평화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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