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꽃

 

임실군 덕치면 그 여자네 집* 앞
섬진강 가에서 오줌을 눈다
바람도 땡볕에 말라
숨이 죽었고
강아지풀을 따라 맴도는 잠자리도
날갯짓이 약하다
점점이 노랗게 핀 애기똥풀
옥수수 대궁 뒤에 이리저리 숨어 보지만
비실비실한 물줄기에도
이내 허리가 부러진다
그리움도 늙었는가
서툰 손에 미꾸라지 빠지듯
온 몸이 다 빠져나간 강가
세월조차 돌아설 힘이 없는데
길 건너 저만치 자귀나무 아래
하얗게 고추 꽃이 피었다


* 김용택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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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곳이 없다